현장 사진의 계단이 있는 이 곳은 가장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중 백병전까지 치러내며 북한군으로부터 고지를 지켜낸 낙동강 마지막 방어선을 지켜낸 해발 830고지의 유학산이다.
볼링벨리라는 마을은 어떻게 유래가 되었을까?
현. 성주중앙교회를 담임하고 계신 목사님을 통하여 역사적 유래를 듣게 되었다. 원래 다부동은 동네이름이고 미군들이 와서 주둔하면서 전쟁중에 다부동을 볼링벨리라고 불렀다.
까닭은 상주와 안동에서 내려오는 양방향 길이 합쳐지면서 천평. 그리고 다시 작은 고개를 하나 넘어가면 대구시로 나가게 되는데 낙동강쪽 왜관읍에서 넘어오는 고개 밑동부분과 만나면서 대구까지는 평지로 되어있어서 아군이 적군을 막아내지 못하였으면 곧 바로 부산까지도 짓 빫혀서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할수 있었을런지 생각하면 다시한번 볼링벨리의 역사로 오늘의 나라가 위기에서 승리하여 존재하게 되었다고 역사의 동네에 사는 목사님께서 말씀을 주셨다.
볼링벨리의 이름은 상주와 안동에서 오는 길과 합쳐지는 곳과 왜관에서 넘어오는 길이 합쳐지는 밑동부분이 마치 볼링공이 굴러가다가 끝에 개골창에 처박히는 곳과 비슷하게 생겼다고 해서 볼링벨리라고 미군들이 다부동지역을 불렀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위기의 6,25전쟁중 이 곳은 그 유명한 백선엽장군 이야기도 있다. 당시 미군들과 연합군들이 올때까지 낙동강 방어선을 지켜내기 위해 당시 지위관 백선엽장군은 부하 장병들을 향해 "만일 내가 뒤돌아서거든 나를 먼저 쏘아라" 하면서 목숨을 걸고 전쟁을 치룬 이 곳이 그 유명한 다부동 전투라고 한다.
대한민국 모든 국민들은 볼링이라는 운동을 모두 좋아한다. 다시는 이땅에 전쟁이 없고 평화의 볼링벨리, 통일의 볼링벨리 부국강병을 이루는 자주국방 대한민국이 되기를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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