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전 ‘3년은 너무 길다’라는 것이 지금은 ‘김건희 특검’으로 수렴
조국의 불가역적 개혁과 개헌은 국민발의 및 국민투표 개념이 없다는 점에서
유신독재 헌법과 같은 맥락
“자치 경찰에 더 많은 권한 부여”가 “국민 일상의 안정과 평화”를 보장하는 것 아냐
관료에 의한 검찰, 경찰 임면권을 민선제로 바꾸어야
22대 총선이 끝나고 막 사흘 지났다. 그런데 이미 조국혁신당 조국의 외침에서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었다. 총선 전 공약과 달리 변질되거나, 전면에서 사라진 것이 있다는 것인데, 현재로서 크게 두 가지 점에서 그러하다. 첫째, 총선 전 구호에서 ‘3년은 너무 길다’라는 것이 전면 부각되었는데, 지금은 ‘김건희 특검’으로 수렴된 것, 둘째, 총선 전에는 ‘지검장 민선제 도입’이었는데, 지금은 이것이 전면에서 사라진 것이다.
‘3년은 너무 길다’와 ‘김건희 특검’은 그 본질상 큰 차이점이 있다. 전자는 정치적, 후자는 사법적인 것이 그러하고, 또 전자는 여러 사람에게 해당하는 공동의 사안, 정치 사회적인 것인데 비해, 후자는 김건희 개인의 거취에 관련한 것이기 때문이다.
김건희의 개인적 일탈과 조국의 딸 조민이 연루된 것으로 다소간(봉사시간 5시간)의 흠결은 그 정도에 있어 비교가 안 된다는 점은 일단 논외로 한다. 검찰, 법원 등 사법 권력이 양자를 다루는 절차와 처벌의 정도가 다른 것이 정쟁과 권력 구조의 부산물이라는 점에서, 양자간 차별은 정치 사회적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거꾸로 김건희 개인을 사법적으로 처벌한다고 해서 제도적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런 점에서 ‘김건희 특검’은 사회적이 아니라 개인적이다. ‘김건희 특검’이 조국의 딸 조민에 대한 처우와 형평을 기할 수는 있겠으나, 그로써 문제의 근원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조국혁신당은 돌풍처럼 일어나 비례 12석을 차지했고, 그 조국에게 향한 질문은 ‘윤석열 탄핵을 추진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조국의 대답은 “대통령 탄핵은 범법 사유가 있어야 된다”는 것으로 회자하고 있다.
여기에 놀라운 반전이 있다. 총선 전 ‘3년은 너무 길다’란 것은 사법적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었는데, 그것이 ‘범법 사유’로 바뀐 것이다. 후자는 정치적이 아니라 사법적이다. “대통령 탄핵은 범법 사유가 있어야 된다”라는 발언을 조국이 정말로 한 것이라면, 그것은 두 가지 함의를 갖는다. 하나는 아직 윤석열을 탄핵할 수 있는 범법의 사유가 충분하지 않다는 뜻, 다른 하나는, 대통령 탄핵은 정치적이 아니라 사법적인 기준에 따라 가부가 결정된다고 보는 것이다.
조국의 이 같은 발언은 윤석열을 탄핵할 수 있는 정치적 혹은 범법의 사유는 차고도 넘친다고 세상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바와는 온도차이에서 전혀 다르다. 윤석열 정부에 대한 비난이 정치적인 것에서 사법적인 것으로 바꾸어버린 조국의 변(辯)은 ‘김건희 특검’이라는 사법절차를 제1의 우선과제로 삼는 것과 정확하게 상통한다.
둘째, 총선 전에 조국이 피력했던 ‘지검장 민선제 도입’이 지금 와서 전면에서 사라진 것은 미래 정책 방향의 치명적 변질을 뜻한다. 조국 혁신당이 추구해야 할 과제로서 어딘가 적혀져 있을 ‘지검장 민선제 도입’은 이제 자주 열리지도 않을 장롱 안에서 잠자는 유물이 될 전망이다.
‘지검장 민선제 도입’이, 합바지 방구 새듯, 쉬 전면에서 사라진 것을 보면 아마 조국도 시민 민초의 정치적 발언권에 대해 애초에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그것은 어쩌다 내건 구호에 불과할 뿐이거나, 아니면 뒷간(화장실) 들어갈 때 마음, 나올 때 마음이 다른 것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겉으로 보면 비슷한 것 같아 확연히 눈에 띄지는 않지만, 조국에게서 보이는 이같은 변화는 조국이 주창하는 개혁 노선의 본질상의 변화를 의미한다. 조국은 검찰 등 각종 혁신을 말하고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창하지만,그 혁신과 헌법개정에는 ’지검장 민선제‘를 비롯한 민초의 정치적 발언권이 생략되어 있다.
조국이 주창하는 혁신이라는 것도 ’그들만의 게임‘으로 전락할 전망이다. 명색이 주권자인 시민 민초가 뒷전으로 빠지고, 정치판이 이른바 위정자 간의 권력다툼의 장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민초에게 항상적 위험부담을 초래한다. 정권이 누구에게로 바뀌는가에 따라 냉탕 온탕이 거듭될 수밖에 없고, 거기에 민초는 언제나 예속되어 수동적인 존재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정치적 발언권을 거세당한 채, 4년 혹은 5년에 한 번 투표하는 것 외에 민초는 그저 꿀 먹은 벙어리로 남아있어야 할 뿐이다. 이번 총선에서 보여준 절묘한 민초의 혜지(慧智)가 온통 침묵으로 사장되도록 버려둘 것이 아니라, 차제에 각종 현안에 대해 국민투표 발의와 결정권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은 유신독재 이전의 체제로 환원하는 것이고, 개헌은 그런 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언제나 어떤 사안이거나 간에, 위정자 간 권력 다툼이 질곡으로 치달을 때, 최종의 궁극적 심판자로서 시민 민초에게 결정권이 주어져야 한다. 그 첫 단추가 조국이 총선 직전 공약으로 외쳤던 지검장 민선제였다. 그러나 그 희미한 등불마저, 조국의 변심으로 인해, 시야에서 사라져버릴 위기에 봉착했다.
조국은 불가역적 개조를 약속하면서 검찰 감사원, 국정원 등을 언급했다. 제 본분을 잊고 정치 권력의 도구, 하수인. 권력의 사유화에 이용되는 검찰이 가진 수사 기소권을 분리하여 기소청으로 수렴, 중대범죄수차청 설치, 기소배심제 도입, 대통령 및 정치보복의 돌격대로 이용되는 감사원의 회계감사 기능 등을 국회로 환원하고, 정치적 목적의 감사를 근절하는 것, 윤석열 정부 들어 설치된 행안부 경찰국 폐지, 이어 수사 준칙등 시행령을 입법 취지대로 돌려 수사권 정립, 자치 경찰에 더 많은 권한과 역할을 부여하여 국민 일상의 안정과 평화를 도모하는 것 등이다.
이런 불가역적 개조의 어디에서도 총선 전 조국이 언급했던 ‘지검장 민선제 도입’은 그 그림자를 찾아볼 수 없다. 그 대신 자치 경찰에 더 많은 권한과 역할을 부여하겠다고 한다. ‘민선제 도입’과 ‘더 많은 권한과 역할을 부여하는 것’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큰 강이 가로놓여 있다. 전자는 아래에서부터의 시민 민초의 의사가 정치에 반영되는 것이고, 후자는 누군가 관료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조국은 “자치 경찰에 더 많은 권한과 역할을 부여”하면 “국민 일상의 안정과 평화”가 올 것으로 계산하고 있으나, 이것은 비현실적이고 공허한 착각이다. 현재로서 중앙이든 경찰이든 권력을 더 많이 가지면 더 전횡할 것이라는 기대 밖에는 갖기 어려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검찰과 경찰은 임명과 승진을 좌우하는 권력의 주구(개)가 되어 권력을 오남용 해왔고, 현재도 그러하다.
조국은 “중대범죄수차청 설치”를 말하고 있으나, 이도 또한 내실있는 기관의 탄생을 보증하는 것이 아니고 허황하다.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얼마나 허황하게 기대를 무너뜨렸는지 하는 것을 보면 그러하다. 공수처가 별 볼일 없는 마당에 “중대범죄수차청”을 또 설치한다고 해서 별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이름을 뭐라 짓든, 이런 기관들이 무기력할 것이라는 전망은 근원적으로 관료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 한 데 기인한 것이다.
관료의 해묵은 타성적 부패는 이들에 대한 임면권을 관료적 서열구조를 탈피하여 민초 시민이 가짐으로써 만이 제어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 점에서 조국이 총선전 제시한 ‘지검장 민선제’는 획기적 돌파구를 지향하는 것 같았으나, 지금은 그것이 뒷전으로 밀려난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조국은 이미 초심을 잃고 관성으로 돌아가 버린 듯하다. 현재 회자하는 짦은 동영상을 보면 그러하다.(https://band.us/band/84898159/post/21541)
이재명이 국민에게 25만 원씩 돌리겠다고 했는데, 조국이 거기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그에 더하여 조국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한다. 그것은 현재 기재부가 가지고 있는 예산편성권을 빼앗아야 한다는 의견이다.
조국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말기 코로나로 힘든 이들을 위해 100% 보조금을 지급하고자 했으나, 기재부에서 그러면 나라 망한다고 반대한 일이 있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 들어서자 바로 기재부가 100% 보조금을 지급했는데, 그래도 나라가 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렇듯 예산 편성권을 가지고 전횡하는 기재부의 예산편성권을 빼앗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누가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권력은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이가 전횡할 가능성이 상존한다. 이런 사실에서 기재부의 전횡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반성할 필요가 있다. 권력이 행정, 입법, 사법부에만 있고, 시민 민초가 개입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면, 여야를 막론하고 위정자가 그 권력을 전횡하게 된다. 그 전횡의 카르텔은 흔히 ’협치‘라는 이름으로 미화되곤 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하겠다.
윤석열 정부가 주창하는 의대증원 2,000명을 두고, 민주당 대표 이재명이 “왜 1,800명이 아니고 하필이면 2,000명이어야 하는가”라는 취지의 냉소적 발언을 했다. 이재명은 그런 냉소적 발언이 윤석열뿐 아니라, 이재명 자신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한 반성을 결여하고 있다. 이재명이 국민 일인당 25만 원을 지급하겠다고 한 것이 그러하다. “왜 20만 원 혹은 30만 원이 아니라 , 하필이면 25만 원인가”하는 것이 그러하다.
윤석열이 ’2,000명 의대 증원‘ 주창하면 돌발 발언이 되고, 이재명이 ’25만 원‘ 돌리겠다고 하면 그것이 돌발 발언이 안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양자는 본질상 같은 맥락에 있기 때문이다. 어떤 정책은 대통령이나 당 대표가 후딱 발상해서 내뱉는 것이 아니라, 정책 수립과 결정에서 객관적인 투명성, 타당성 등을 확보할 수 있는 일정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다. 거기에 이해 당사자인 민초 시민의 발언권이 생략되어서는 안 된다.
총선 직전 인사조직연구소장 최동석이 조국을 사기꾼으로 매도하고, 롯본기 김교수를 자칭하는 이의 유투브에서는 조국에게 속아서는 안 된다는 경고를 날렸다. 그런데 이 같은 논리는 성립하기 어렵다. 조국이 누구에게 사기치고 배신하고 하나? 국힘당은 대놓고 반대하고 있으니 그것은 아닐 것이고, 시민의 의견도 가지가지라 일정한 기준이 있을 수 없으므로 그도 아닐 것이고, 아마 민주당, 혹은 민주당 지지자를 기준으로 해서 그런 말을 쓴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사기꾼, 배신이라는 용어를 쓰기 위해서는 사기 치거나 배신하지 않았을 때의 어떤 상황이나 인물 등 일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기준의 실체가 없다. 민주당은 적어도 지금까지 ‘수박당’으로 알려진 바 있기 때문이다.
그중에도 이재명이 버팀목이 되어 이번 총선의 결과를 이끌어 냈으나, 여기서 민주당만 믿고 있어서는 안 되는 것이 두 가지 변수가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이재명을 제거하려는 음모가 언제나 도사리고 있고, 이재명이 사라진 민주당은 미래를 기약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가덕도에서 목에 칼을 맞았고, 그 칼은 가까스로 죽음을 피해갔다. 둘째, 사법절차를 통한 제거 또한 있을 수 있다.
이렇듯 부실하고 가변적인 민주당을 두고, 그것을 기준으로 하여 조국을 사기꾼, 배신자로 매도할 수는 없는 일이다. 조국이 변심하여 공약을 비켜간다면, 그것은 다른 누구에 대한 사기나 배신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의 한계에서 오는 것이다.
한갓 찻잔 속의 푹풍, 찻잔 속의 혁신으로 끝나버릴지도 모른다. 학자, 관료 출신의 생태적 한계를 끝내 버리지 못 한다면 그러하다.